당신은 오돌토돌한 살구색 벽돌들을 쌓아 만든 주택의 한 면을 따라 걷고있다. 명도가 조금씩 다른, 밝거나 어두운 살구색 벽돌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맞닿으며 생기는 그림자가 마치 손바닥의 주름처럼 보인다. 모퉁이를 돌자 이어지는 살구색 벽 안에 환풍구를 연결하는 조그맣고 하얀 관과, 그 옆 어둡고 널찍한 창 하나가 있다. 직사각형의 모양을 한 창은 하얀 틀로 양쪽을 여닫을 수 있게 세 분할이 되어 있다. 창의 양측은 모두 열려 있었는데, 거뭇한 방충망 너머로 연두색 커튼이 살짝 묶여 있는 것이 보인다. 그 너머의 공간은 어둑한 형체만 가까스로 알아볼 수 있을 뿐이다. 창의 가운데 구역으로 시선을 옮기자 반사되는 당신의 얼굴이 보인다. 당신은 두 발짝 뒷걸음친다. 창과 벽 위로 해질녘 빛이 엷게 드리우고 있다. 유리에 비친 나무의 형상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안쪽 벽의 모습이 자리를 옮기자 엿보인다. 벽 한 가운데 십자가가 걸려있다. 당신은 잠시동안 어렴풋한 십자가의 형체를 올려다본다. 짧은 처마 밑의 그림자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다.
그 공원에는 가지가 두 갈래로 뻗은 나무가 있다. 그 중 두꺼운 가지에는 거칠게 갈라진 표면의 껍질들이 종종 하얗게 바래버린 흔적이 있는데, 이 가지는 위로 갈수록 조금씩 좁아지는 형상을 하고 있다. 아래쪽 줄기에서 뻗어 나온 다른 가지는 그보다는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다. 이 나무에 달린 잎은 그리 무성하지 않다. 해가 쬔다고 해도 적합한 그늘이 생기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 왼쪽엔 앉을 곳이 마련되어 있다. 주홍빛이 도는 두껍고 기다란 목재 테이블이 그것이다. 이 테이블은 야외용으로 제작된 것처럼 보이는데 앉았을 때 명치보다 조금 위에 상 부분이 닿을 정도의 높이다. 이 책상을 받치고 있는 다리는 이중으로 세 번씩 교차되어 있어 지면이 고르지 못한 흙잔디 위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. 성인 네 명정도가 둘러앉기에 적합해보이지만 예배당에서 사용할 법한 고풍스럽고 육중한 6인용 목재 벤치가 주홍빛 테이블을 멀찍이 둘러싸고 있다. 이들은 공원 중앙부를 한 꼭짓점으로 바라보며 마름모꼴을 그리고 있는데, 목재 벤치는 나무를 마주 보는 왼쪽에 두 개, 그 오른쪽에 하나가 있다. 그 뒤를 바라보면 파란 지붕의 컨테이너 건물이 벽 위쪽 구석에 조그만 창을 내어놓고 마주하고 있다. 가스통, 빗자루, 사다리, 삽 따위의 농기구들과 마감이 잘 되지 않은 연 나무색 평상 하나가 컨테이너 벽에 기대어 있다. 해가 땅을 등지기 직전, 제 빛을 모두 내어놓는 시간이 되면 평상 위로는 그늘이 늘어지고, 더 앞에 자리해 컨테이너 그림자가 닿지 않는 주홍빛 테이블과 벤치들 위로는 빛이 온전히 떨어지며 페인트의 광택이 하얗게 일어난다. 테이블과 의자 사이 듬성해진 잔디 위로 푸른 그림자와 금빛 해가 사이사이 떨어지고, 더 이상 사람이 자리하지 않는 벤치 위로 일어나는 먼지들이 해 안에서 흩날리며 반짝인다.